한국 드라마/영화의 고질병 '감정과잉'
로맨스를 다룬 국내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감정과잉'이다.
대개 문제는 둘 중 하나다. 무르익지도 않은 감정을 터뜨리거나 아니면 터뜨린 감정이 너무 과해 신파극이 되거나...
극중 주인공의 감정은 매우 섬세하게 다뤄져야 한다. 관객은 그 감정을 매우 예민하게 쫓아간다.
감정의 완성은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감정의 생성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 주인공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겨난다. 고요한 호수에 파문이 일 듯 고요했던 주인공의 감정이 이전과는 다른 상태가 된다.
둘째, 감정의 고조다. 이후 주인공의 감정은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서서히 고조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가랑비에 옷섶이 젖듯 주인공은 자기로 모르게 그 감정에 빠져들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조되고 있는 감정을 효과적인 비주얼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감정의 표출이다. 주인공의 내면에 서서히 쌓인 감정은 어느 순간 주인공이 그 크기를 감당할 수 없게 됐을 때 표출된다. 이것을 대사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촌스러운 방법이다. 이것은 절대 대사로 처리하면 안 된다. 이것은 감정이 쌓일대로 쌓인 상태가 아니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어떤 남자가 혼자 감정이 충만해 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한다.
"사랑해..."
마침 여자도 그런 상태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로맨틱하고는 매우 거리가 먼, 아주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다.
반면 혼자서만 감정이 키우던 남자가 여자 앞에서 아무런 말 없이 눈물을 글썽이다가 사라졌다. 그는 여자가 어려움을 처한 것을 알고 안타까움에 찾아왔지만 그녀가 도움을 거절할까 싶어 말 없이 발길을 돌린 것이다. 여자는 순간적으로나마 남자가 자신을 향해 키우던 감정의 크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더 강력한 감정의 표출인가?
영화 '러브레터'는 감정처리의 교과서라 할 만 한 영화다.
애인이었던 후지이 이츠키가 죽은 산을 찾아온 히로코가 그리움의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이다. 새벽녁 그가 유명을 달리 한 산이 보이는 산장 앞에서 그녀는 멍하니 산을 바라본다. 그러던 그녀가 눈밭을 달리기 시작한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눈밭을 그녀는 외투도 벗어던진 채 달려나간다. 미친 듯 달려나가서 그 유명한 대사 한 마디를 외친다.
"오겡끼데스까..."
너무나 할 말이 많았지만 그 순간 생각나는 말이 그것 밖에 없다. 그녀의 행동에서 그녀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그리움의 감정이 얼마나 컸는지 관객들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사람들은 안다. 이런 행동은 쉽게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도 히로코의 진심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을...
감정처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서로 울며불며 난리를 친다고 감정이 전달되진 않는다. 최근 제작되는 우리나라의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감정처리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만 더 고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동원했더라면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감 버튼 꾹 한 번 눌러주세요...^^ 로그인 하지 않아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