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소통의 의미 '컨택트'
만남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것은 만남으로 이루어진 관계의 끝을 봐야 알 수 있다. 만남이 축복이 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만남은 비극이 되기도 하고 해피엔딩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그 관계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만남에 무책임했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에게... 이것은 끝없는 자책의 구렁텅이로 우리를 몰아넣을 것이다.
루이스 뱅크스(에이비 아담스분)는 언어학자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딸을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딸은 그녀의 이혼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왜 아버지가 자신을 떠나야 했는지... 딸은 그것을 알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딸에게 설명을 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딸이 죽고만다. 이 사건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로 남는다. 명색이 언어학자임에도 정작 자신의 딸은 납득시키지 못한 채 보냈다는 뿌리깊은 자책이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는다. 이후 그녀는 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홀로 적막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에 외계인이 찾아온다. 세계 12곳에는 모카빵을 세워놓은 모양의 거대한 우주선이 정박한다. 사람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그들은 일단 외계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은 외계의 행성에서 온 자들이다. 지구에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 미군과 정보기관이 합동으로 구성한 TF는 외계인과의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할 인물을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되고 고심 끝에 루이스를 찾아온다.
그녀는 어떨결에 이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맡게 된다. 처음에 그녀는 중압감에 몹시 힘들어하지만 곧 이상하게도 이 일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했던 그녀의 트라우마가 오히려 이 일을 계속할 힘을 제공하는 이 아이러니는 이 영화에서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녀에게는 외계인에게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얻어오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그녀는 아주 기초적인 단어를 외계인들에게 제시하는 방법으로 그 단어가 '헵타포드'라 불리는 그들의 문자로 표현되는 형태를 잡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녀가 올린 성과로 일은 급진전된다. TF는 외계인의 언어 일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어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외계인의 대답은 지구인들을 일제히 공포에 몰아넣는다. 외계인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Use weapons."(무기를 사용하라)
루이스는 이것일 오해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많은 만남들을 비극으로 이끈 오해와 반목이 전지구를 혼란에 몰아넣는다. 이 장면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루이스와 이안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외계인들의 진의를 확인해보는 행위조차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먼 우주를 날아와 지구인과 대화를 하려 하는 외계인과의 만남을 해피엔딩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너무도 쉽게 포기한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만남의 끝이 비극이 될 지 희극이 될 지 알 수 없지만 소통을 포기한 순간 그 만남은 즉시 비극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는 SF영화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영화에서 외계인은 지구를 침공한 무뢰한이 아니다. 그들은 지구인과의 만남, 그리고 대화를 원한다. 만남과 소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영화에서 만남의 대상이 외계인인 것은 참으로 멋진 설정이다. 아무리 지구상에 그들의 언어를 아는 사람이 없다 할지라도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길은 있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팔방미인이다. 스토리와 영상미, 배우들의 연기, 감독의 연출... 어느 것 하나 흠 잡을 것이 없다. 이 영화가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조금만 주의 깊게 보시면 충분히 그 메시지를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본다. 이 영화는 놓치지 않고 보시길 바란다. 이 영화는 시간이 흐른 뒤 틀림 없이 명작의 반열에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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