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i.love.Story

세상이 정글이라는 생각 본문

에세이

세상이 정글이라는 생각

모피어스 김 2018. 3. 17. 12:15

옛날에 꼰대 한 분과 식사겸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취기가 약간 오르자 이 분은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뭔가 가르침을 줘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는지 자신의 엉성한 세계관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분은 말했다.

"세상은 말이지.. 거대한 먹이사슬이야."

얘기인즉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정글이니 강자가 되려 노력하지 않으면 남에게 잡아먹히는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자신이 포식자의 위치에 있다는 자부심을 내비쳤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포식자의 위치에 있다는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쓴웃음이 절로 났지만 비즈니스상 중요 인물이어서 참고 그의 말을 들어줘야 했다.

나이 든 꼰대가 술 먹고 한 헛소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것은 우리나라 보수세력의 세계관이다. 그들은 실제로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양극화와 특권의 문제 저변에는 보수의 이런 세계관이 깔려있다. 우리가 볼 때 이런 문제는 불균형이고 특권은 부당한 것이지만 그들의 시각에서는 포식자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일견 사리에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문명과 야만을 혼동한 것에 불과하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는가? 이것을 보면 정글이 어떤 곳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곳에서 약함은 곧 죄가 된다. 무리의 이동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영양이나 얼룩말은 바로 포식자의 먹이가 된다. 이곳에서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백수의 제왕이라는 사자도 하이에나 떼에게 둘러싸이면 무사할 수 없다. 정글은 그런 곳이다.

그러나 인간의 세상은 다르다. 대형 놀이공원에 가면 '미아 보호소'가 있다. 하루 종일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이 곳에서는 부모를 따라나선 아이들이 혼자 길을 잃는 사태가 자주 벌어진다.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 아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도 사악한 범죄자를 만나지 않는다면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아는 사람들에 의해 미아 보호소에 맡겨질 가능성이 크다. 아이의 이름과 입은 옷의 색깔, 그리고 아이가 기억하고 있는 부모에 대한 정보가 놀이공원 내 방송을 타고 나가고 부모는 부랴부랴 아이를 찾으러 올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세상이다. 인간의 세상에는 약자를 보호할 수단이 있고 이것은 아무리 약자라도 인간으로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것은 문명과 야만의 차이이기도 하다.


인간의 세상은 동물의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 동물의 행동은 본능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으며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추구할 줄 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철학과 도덕이 있다. 

인간은 동물보다 차원이 높은 존재다. 그런 인간이 왜 동물의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이 정글이라는 시각은 이 세상을 생존이라는 아주 단편적인 욕망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것이다.

한국사회의 극심한 경쟁은 보수의 이런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한국전쟁 후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기까지 강력하게 작동했고 그 과정에서 뚜렷한 동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가난을 벗어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부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이것은 변질되었다. 경쟁은 더 이상 잘 살아보자는 순수한 동기가 아닌 남보다 더 많은 부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것이 됐고 이때부터 인간은 소외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된 시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살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강박적인 경쟁을 하며 삶을 누리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경쟁이었던가?

생존을 위해 살아야 했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살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정글이라고 외치며 생존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생존본능의 발로일까? 아니면 탐욕의 결과일까?

우리 사회에 경쟁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쟁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선의의 경쟁이어야 한다. 남을 짓밟고 이기는 그런 경쟁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이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정글이어서는 안 된다. 그곳은 상생의 공간이어야 하고 동물적인 욕구만을 추구하는 야만이 극복된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만이 갖는 차원 높은 욕구들이 추구되고 만족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

공감 버튼 꾹 한 번 눌러주세요...^^ 로그인 하지 않아도 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