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i.love.Story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 본문

에세이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

모피어스 김 2017. 11. 26. 17:42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맛 좋은 어머니의 유전자가 내 몸 속에서 서서히 발현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칼질을 하는 것이, 육수를 내고 간을 맞추는 것이 몸에 밴 듯 자연스러워졌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쉐프 수준의 요리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난 아마추어다. 그래도 비싼 돈 내고 학원에 간 적도 없고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다. 그냥 혼자서 인터넷에 깔려있는 레시피를 뒤져가며 요리를 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내 요리를 꽤 맛있다 하며 먹는다.

그렇게 시작한 요리가 이제는 내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이 됐다. 큰 웍에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서 깔고 손질한 코다리를 얹은 다음 새빨간 양념을 듬뿍 넣어 졸이기 시작한다. 코다리가 양념과 섞여 익기 시작할무렵 온 집안에 그 특유한 냄새가 진동을 하면 아이들이 식탁 앞으로 모여든다. 반찬 몇 가지와 함께 흰 쌀밥을 놓아주면 어느새 코다리 한토막씩을 들고 가 어육을 발라낸 다음 밥 위에 얹어 야무지게 먹기 시작한다. 꽤 많은 양이었는데 파 몇 조각과 양념 소스만이 접시 바닥에 남았을 때 묘한 쾌감을 느낀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돌아서는 아이들이 고맙다. 이때 요리는 꽤나 흐뭇한 노동이 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요리는 남자의 일이 아니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집안에서는 거의 금기사항에 가까웠다. 아직도 아버지 세대 어르신들 중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 일이 난 것처럼 정색을 하는 분들이 실제로 계신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그리고 노인들의 수명은 이전 세대에 비해 가히 혁명적이라 해도 좋을만큼 늘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유교적 관념이 남아있는 어르신들은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다. 끼니를 챙겨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이 역할은 대부분 배우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세대의 여성분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남편들의 끼니를 챙겨왔다. 이제 이것이 지겹다고 해도 누가 그 분들을 탓할 수 있으랴..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여성들은 사회적 교류의 폭이 커지는 반면 남성들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아버지 세대의 남성들은 식생활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들은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근처 해장국집에서 한 끼를 해결한다.

난 그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들은 요리가 인생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만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들의 고정관념은 그들의 인생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앗아가버린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존재다. 자기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해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또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위다. 전쟁터에서 살기 위해 아무거나 배 속에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면 음식은 삶과 일상의 정서를 담고 있고 잘만 활용하면 교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평생 남의 끼니를 챙겨왔던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 챙김을 받고 싶을 것이다. 그럴 때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내놓는 것은 생각보다 큰 즐거움이 된다.

김훈의 에세이집 '라면을 끓이며'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 쓸쓸해하는 나의 존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요리를 하고 이것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은 대단히 정서적인 행위다. 수십년 동안 남편과 가족의 끼니를 챙겨온 어머니들은 단순히 의무감만으로 요리를 한 게 아니다. 내가 만든 요리를 통해서 가까운 사람들이 포만감에 만족스러운 얼굴을 할 때 쉽지 않은 요리의 과정은 보상을 받는다. 어머니들은 말했다. '내 새끼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좋다'고...

공감 버튼 꾹 한 번 눌러주세요...^^ 로그인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와 사유의 적, 피로사회  (0) 2017.12.11
어설픈 현실주의  (0) 2017.12.03
비교우위의 삶을 넘어서  (0) 2017.11.23
결혼은 현실? 결혼은 일상!  (0) 2017.11.22
낮은 포지셔닝의 지혜  (0) 2017.11.1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