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i.love.Story
어느 유부남의 게으른 하루 본문
휴일에 느즈막히 눈을 뜬다.
아무 생각 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결혼 12년 만에 맞는 혼자만의 아침이다.
창을 통해 나른한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다시 눈을 감는다.
어제 끝내 정리하지 못한 이슈가 마음에 걸린다.
아직 담당자를 설득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일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다시 잠이 든다.
정오가 되어서야 눈을 뜬다.
슬슬 허기가 느껴진다.
상체를 겨우 일으키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혼자 피식 웃어본다.
늘보와 같은 동작으로 일어서 주방으로 간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연다.
마땅히 먹을 것이 없어 보인다.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냉장고 문을 닫는다.
그러나 실망할 것 없다.
라면이 있기 때문이다.
수납장을 열어 라면 하나를 꺼내고 물을 렌지 위에 올린다.
조금 있으니 물이 끓기 시작한다.
면과 스프를 넣고 스마트폰을 켠다.
음원서비스 앱을 실행시키고 따로 모아두었던 명곡들을 플레이시킨다.
나얼, 김동률, 윤미래, 이소라의 노래가 차례로 흘러나온다.
다 익은 라면을 냄비째 식탁으로 들고 온다.
그리고 지난 번에 어머니께서 담가주신 김치를 꺼낸다.
잘 익은 김치 냄새를 맡으니 허기가 더 느껴진다.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설겆이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대충 세수를 한다.
슬리퍼에 추리닝만 걸치고 집을 나선다.
몇 년 전 용인으로 이사를 온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집 주변에 녹지가 정말 많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나무마다 파릇파릇한 잎새를 터뜨리고 있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를 흔들어대자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이 소리를 들으며 '우리 집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있었나?'하고 새삼 놀라워 한다.
길을 걸으며 상념에 잠긴다.
이럴 때면 꼭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들이 있다.
그렇게 걷다보니 동네 도서관이다.
서가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 간만에 책구경을 한다.
새책들이 들어왔나보다.
전에 보지 못했던 책들이 꽤 많다.
한참동안 이 책, 저 책을 훌어보다가 '파리의 심리학 카페'라는 책을 고른다.
파리에 매주 목요일, 18년간 열린 심리학 카페가 있단다.
흠... 흥미로운 이야기다.
책을 빌려 집으로 돌아온다.
소파에 누워 책을 읽는다.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다.
삼분의 일쯤 읽으니 좀 지루하다.
TV를 켠다.
채널을 이러저리 돌리다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발견한다.
낄낄거리며 TV를 본다.
그러다가 졸음이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다시 잠이 깨니 밖이 벌써 어둑어둑하다.
'이렇게 하루가 가버리다니...'
아쉽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건 없지만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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