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에세이 (38)
김작가의 i.love.Story
언제부턴가 요리를 하는데 취미를 붙였다. 매주 '집밥 백선생'을 챙겨보며 주말마다 요리를 해서 아이들을 먹였다. 나는 요리를 비교적 쉽게 배운다. 학원을 다닌 적도 없다. 손맛 좋은 어머니의 유전자가 내게로 온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다양한 재료로 맛을 내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을 사는데 뭔가 대단한 것이 필요한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때 난 마치 뭔가에 씌인 것처럼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었다. 나는 바보 같이 행복에 조건을 걸었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텐데... 저것만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보낸 시간은 후회로 남았다.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난 나의 현재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보다 나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
휴일에 느즈막히 눈을 뜬다. 아무 생각 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결혼 12년 만에 맞는 혼자만의 아침이다. 창을 통해 나른한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다시 눈을 감는다. 어제 끝내 정리하지 못한 이슈가 마음에 걸린다. 아직 담당자를 설득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일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다시 잠이 든다. 정오가 되어서야 눈을 뜬다. 슬슬 허기가 느껴진다. 상체를 겨우 일으키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혼자 피식 웃어본다. 늘보와 같은 동작으로 일어서 주방으로 간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연다. 마땅히 먹을 것이 없어 보인다.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냉장고 문을 닫는다. 그러나 실망할 것 없다. 라면이 있기..
늦은 밤 퇴근길 우리나라의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빈다. 지하철을 타면 피로에 찌든 사람들이 깜빡이는 형광등의 조명 아래 기계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 제일 많고, 뉴스를 보는 사람, SNS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도 꽤 된다. 지하철 안에서까지 업무관련 서류를 검토하는 직장인과 강의를 요약한 노트를 펼쳐놓고 공부를 하는 수험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여유'라는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이다. 늦은 밤 지하철은 초과근무가 일상화 되어 있는 피로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장소다. 2016년 OECD가 발표한 고용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113시간..
어설픈 현실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 외에는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그래서 그들은 가시적인 것,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치와 물리적인 요소들을 선호한다. 정확한 통계수치가 들어간 보고서와 수치화된 실적 역시 이들이 애지중지하는 것들이다.그래놓고는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수치화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맞을 지 모른다.(실은 이 영역에서도 그들은 틀릴 때가 많다.)문제는 이것이 세상의 반쪽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생텍쥐베리는 그의 명작인 '어린 왕자'에서 이렇게 말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찬란한 성취는 처음에는 아예 눈에 보이지 않거나 별볼 일 없어서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커버그의 ..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맛 좋은 어머니의 유전자가 내 몸 속에서 서서히 발현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칼질을 하는 것이, 육수를 내고 간을 맞추는 것이 몸에 밴 듯 자연스러워졌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쉐프 수준의 요리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난 아마추어다. 그래도 비싼 돈 내고 학원에 간 적도 없고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다. 그냥 혼자서 인터넷에 깔려있는 레시피를 뒤져가며 요리를 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내 요리를 꽤 맛있다 하며 먹는다. 그렇게 시작한 요리가 이제는 내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이 됐다. 큰 웍에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서 깔고 손질한 코다리를 얹은 다음 새빨간 양념을 듬뿍 넣어 졸이기 시작한다. 코다리가 양념과 섞여 익기 시작할무렵 온 집안에 그 ..
"남 부럽지 않게..." 우리 부모세대의 삶을 지배해왔던 워딩이다. 생존을 위해 살아야 했던 시대에 이것은 소박한 바람이었다. 마당에 정화수 한 사발 떠놓고 혼인을 하던 시대에는 이 말이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갖추고 뭘 해도 했으면 좋겠다는 아주 소박한 희망사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이 말의 의미는 변질되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해 비교우위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적이고 천박한 욕구를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그래도 나이가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데 승용차는 2000cc급 이상은 타야 하고 어디서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유명 골프장 회원권은 있어야 하며 에베레스트에 등정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지역의 사람들이 입는 캐나다 구스다운을 입어..
한국에서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은 많은 경우에 '잘난 사람'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도 나 정도 되면 이 정도의 사람은 만나야 돼...' 맞선이나 소개팅을 나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장사치의 심리가 강하게 작동한다. 여기에 나중에 이 사람을 가족이나 주변사람에게 공개했을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에 대한 고려도 함께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 교제는 일단 이런 기본적인 조건들이 충족된 다음에 생각해야 할 문제다. 한국에서 결혼은 아직 '개인의 일'이기보다는 '집안의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본인 이외에도 만족시켜야 할 사람이 있는 것이다. 조건을 따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이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이 말을 성경에 나오는 잠언이라..
탁월한 성취에 빛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성취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찬사와 인정에 익숙해지다보면 가장 잃기 쉬운 것이 객관성이다. 객관성을 잃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사를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벌어진다. 탁월한 성취는 한 사람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보통 시대의 요구에 잘 부응한 결과이며 타이밍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헌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쉽게 말해 탁월한 성취는 운도 따라주어야 하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 탁월한 성취의 사람은 이 부분을 계산에서 빠뜨린다. 틀린 계산은 곧장 마이너스로 처리되어 이 사람의 말과 행동에 반영되며 스스로를 ..
요즘 김생민씨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알뜰하고 성실하며 부지런한 남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의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인기 팟캐스트 중 하나다. 이것을 들어보면 그의 주장이 매우 일관되고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철저하게 실천한다. 그의 삶은 투쟁이다. 돈을 써야 할 경우에도 어떻게든 돈을 안 쓰고 넘어갈 방도를 찾아낸다. 이른바 극단적 내핍의 삶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꾸준히 돈을 저축한다. 이것은 정말이지 그의 말마따나 '절실함'이 없이는 실천하기 어려운 삶의 방식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무나 이렇게 살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신용소비가 일상화된 오늘날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많은 사람들은 신용소비를 ..
로버트 레드포드가 직접 감독과 주연까지 맡아 열연한 '호스 위스퍼러'라는 영화가 있다. 난 이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상처 입은 영혼이 어떻게 치유되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이 영화에는 '필그림'이라는 말이 나온다. 필그림은 주인인 그레이스 대신 트럭에 치이는 대형사고를 당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상처가 심하면 모든 것을 거부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필그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거칠고 난폭해진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예민해지고 특히 사람의 접근을 거부한다.말 치료사인 톰 부커(로버트 레드포드분)는 우여곡절 끝에 필그림의 치료를 맡는다. 이 치료의 과정에서 명장면이 나오는데 아래 사진이다. 톰은 또 다시 사소한 자극에 놀란 필그림을 풀어준다. 필그림은 쏜살같이 초원으로 뛰어나간다. 톰은 필그림을 잡으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