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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리뷰/영화는 인생이다

부러진 화살-불의한 사법부에 대한 고발

모피어스 김 2017. 10. 28. 20:18

영화의 흥행요소 중 '시의성'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되는 시대상을 잘 반영했을 때 관객으로부터 폭발적인 공감을 얻어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1998년에 개봉했던 '여고괴담'이 좋은 예이다. 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우정조차 존재할 수 없었던 공간이 학교라는 설정은 당시 실제로 그런 교육환경을 겪으며 자란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가히 폭발적인 공감을 얻어냈다. 영화 '도가니'도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비열한 사회를 고발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어낸 것도 관객들이 경험했던 사회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가 한국 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사랑과 용서를 모토로 하는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장애아학교에서 벌어진 이 기가 막힌 사건들은 학교의 교사나 운영자가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라고 말씀했던 예수의 가르침이 아닌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종종 사회를 고발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 이야기하려 하는 영화 '부러진 화살'도 부패한 사법부에 대한 고발장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메인으로 사용된 근사한 이미지의 포스터보다는 이 포스터가 영화의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김경호 교수(안성기분)는 피고답지 않게 법복을 입고 판사석에 앉아 알량한 권위주의를 내세우는 법관들을 꾸짖는다. 정의를 추구하고 구현해야 할 법관들이 자신들의 특권과 권위에 연연해 불법을 저지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관객들은 틀림없이 이 부분에서 감정이입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시대상황이 이 감정이입을 더 강렬하게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다. 2007년 김명호 교수의 석궁테러사건을 영화화했다. 소재 선택은 매우 적절했다고 보여진다. 이 사건만큼 사법부의 부패상이 극명하게 보여진 사건은 없다. 게다가 부패한 법관에 대한 응징수단으로 '석궁'이라는 참으로 신선한 도구가 사용되었다. 영화적 소재로는 부족함이 없다. 이런 소재를 각색해서 영화로 재구성했기 때문에 소재에서 오는 리얼리티도 살아있다.

 

주인공인 김경호 교수는 대학입시에 출제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하게 해고된다. 그는 교수지위 확인소송을 통해 교수직을 되찾으려 하지만 이 소송에서 패소하고 곧바로 항소하지만 이 마저도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된다. 분노한 그는 담당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하기에 이르고 이 사건은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사법부는 그의 행위를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테러로 규정하고 엄중대응 방침을 밝힌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의 수사에 문제점이 많았음이 드러나면서 금방 결론이 내려질 것 같던 재판은 난항을 거듭하게 된다. 선임된 변호사는 이 사건을 합의로 해결하려 하지만 김경호가 이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그는 고립무원의 상태가 된다.


김경호 교수역의 안성기는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냉철한 이미지로 강직하면서도 논리정연한 말솜씨로 부패한 판사들을 몰아세운다.

 

그는 명석한 학자답게 감방에서 스스로 법전을 공부해서 법적 대응에 나선다. 그는 강직하며 용기있게 불의에 항거하는 지식인이다. 그러나 죄수가 홀로 법적 대응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는 변호사를 필요로 하게 되고 그의 부인이 백방으로 쓸만 한 변호사를 수소문하지만 판사가 엮여있는 사건의 특성상 나서려는 변호사가 없다. 그렇게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마침내 변호사를 선임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박준(박원상분)이다.



이 영화에서 껄렁껄렁한 변호사 박준 역을 연기한 박원상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존재감이 부족해보인다. 안성기가 연기한 김경호의 캐릭터가 워낙 도드라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준 정도의 배역이라면 뭔가 중요한 반전을 일으키는 역할 정도는 주어졌어야 하는데 김경호의 보조 역할에 머문다. 이것이 바로 이 배역의 한계였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참으로 아쉬웠다.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한 배역이 나오는 시간이 길 때 느껴지는 밋밋한 감이 이 영화 스토리의 결정적인 약점이기 때문이다. 배우 박원상은 좋은 연기를 해놓고도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느낌이다.




어쨋든 김경호와 박준은 좋은 파트너가 된다. 김경호의 논리정연함과 의연함, 박준의 법정경험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법정투쟁은 유리한 국면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법부의 법관들이 가만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서 그들의 투쟁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김경호 & 박준 파트너와 사법부와의 대결은 점점 더 첨예회되고 마침내 법과 정의는 뒷전이고 특권의식과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 사법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 신재열 판사(문성근분)와의 대결이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판사 신재열은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부패한 사법부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김경호의 논리정연한 주장을 같지 않다는 표정으로 깔보는 그의 표정에서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의를 위해 법정에 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처입은 자존심과 특권의식을 위해 법복을 입고 판사랍시고 앉아 있는 자의 위선을 배우 문성근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해낸다. 마지막 법정 대결에서 신재열은 끝내 김경호에게 유죄를 선고하지만 그 재판에서는 김경호의 결백이 증명된다. 명백한 증거를 눈 앞에 두고도 끝내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를 택하는 사법부에게 재판정의 사람들은 계란을 던지고 비난을 퍼붓는다.



징역 10년형이 확정된 김경호가 교도소에 수감되던 날 그의 태도가 유달리 당당한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비록 힘을 가진 판사에 의해 몸은 감옥에 갇혔지만 그의 결백은 이미 입증되었다. 결백이 입증된 자의 당당함이 그의 미소에 배어 있다.

 

뜬금 없는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는 특권층이 망쳐왔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이후로 유난히 쿠데타가 많았던 우리의 역사에는 쿠데타의 횟수만큼 공신들이 많았다. 스스로 킹메이커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그렇듯 그들은 늘 법 위의 존재였다. 이들은 조선의 빛나는 법과 제도를 그들의 특권을 이용해서 망쳐놓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사법부도 그들의 특권의식을 이어받았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사법고시라는 시험에 한 번 합격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어마어마했다. 그 특권을 누리는 과정에서 이들의 뼛속까지 스며든 특권의식이 이들의 본질이 된 순간 대한민국의 정의는 물 건너간 것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특권을 가지고 있고 또 이것을 즐기는 자에게는 도전하는 자가 가장 미운 법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그 부당한 특권은 정상인 것이 된다. 이것은 국가적인 불행이다. 따라서 특권에 대한 도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특권에 도전해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했지만 감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정의가 구현되지 못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순수하게 영화적 완성도의 문제를 떠나서 이 점에서는 매우 성공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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