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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리뷰/영화는 인생이다

블랙 스완 - 내적 갈등의 표출

모피어스 김 2017. 10. 23. 23:24

이 영화의 메인 포스터 비주얼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완벽주의자의 얼굴에 금이 가 있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감독 : 대런 아로노프스키

주연 : 나탈리 포트만, 뱅상 카셀, 밀라 쿠니스

각본 : 마크 헤이먼

 

영화 '블랙 스완'은 완벽주의에 관한 영화다. 완벽한 무대를 만들었지만 결국 그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한 발레리나의 이야기다. 완벽주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완벽주의는 좋은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일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완벽을 추구하되 완벽해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순도 100%의 완벽함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완벽해지려고 할 때 불행이 찾아온다. 이것은 삶의 원리다. 영화 '블랙 스완'은 이것을 참으로 밀도 있는 심리묘사를 통하여 보여준다.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완벽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한 발레리나의 내면이 붕괴하는 과정이 치열한 내적, 외적 갈등을 통해서 보여진다. 이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 치열함과 리얼리티, 치밀함에 감탄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니나의 내적 갈등이 제대로 표출된다. 니나역을 맡았던 나탈리 포트만은 니나가 느꼈던 불안함과 초조함, 질투,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을 기가 막힌 연기력으로 표현해낸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주인공 니나를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증을 갖도록 몰아가는 과정이다. 이 불쌍한 여주인공은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완벽주의에 집착하도록 비극적인 운명으로 내몰린다. 그 과정에는 참으로 정교한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다. 내밀한 내면의 변화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민큼 그 장치들은 절대로 어설퍼서는 안 된다. 이런 작업에는 참으로 탁월한 감각과 섬세함이 요구되는데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이 어려운 임무를 참으로 멋지게도 해냈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니나의 주변인물들이다. 특히 니나의 어머니, 발레단 단장 마스, 발레단 내 라이벌 발레리나 릴리, 그리고 전 수석 발레리나 베스를 주목해서 봐야 한다. 이 세 사람은 본의 아니게 니나를 비극적 운명으로 내모는 악역을 담당하게 된다. 이 네 사람은 번갈아가며 니나와 접촉하면서 니나가 강박적으로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만든다. 니나는 결국 이 네 사람에 둘러싸여 완벽주의를 추구하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 스토리의 주요 골격이다. 이것을 분석적으로 접근해보는 것은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본 영화 중에서 이 영화만큼 짜임새 있는 스토리구조를 가진 경우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럼 한 사람씩 이 인물들이 했던 역할과 거기에 니나가 보였던 반응을 살펴보자.




먼저 니나의 어머니다. 그녀가 보여주는 특성은 '과보호'이다. 그녀는 딸 니나에게 집착한다. 그 배경에는 니나를 임신하는 바람에 발레리나로서의 인생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녀의 과거가 자리잡고 있다. 그녀에게 니나는 단순한 딸이 아니다.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이뤄줄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니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어머니라기 보다는 매니저에 가깝다. 그리고 어떤 때는 채권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보기에 니나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으므로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이룸으로써 자신에게 만족감을 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어머니로서의 애정보다 못 다 이룬 꿈에 대한 욕망이 앞서 있다. 그래서 이들 모녀 사이에는 냉기류가 흐른다. 니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따스함 보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발레단장 토마스는 참으로 용의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백조의 호수 주연 자리라는 카드를 쥐고 여러 발레리나들 사이를 오가며 경쟁의식을 조성하고 이들에게 최고의 퍼포먼스를 뽑아내고자 한다. 그는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매혹적이지는 않은 니나를 주연으로 발탁하고는 그녀에게 가혹한 임무를 맡긴다. 그것은 매혹적인 흑조로의 변신.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분위기가 있고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니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에게 이번 공연은 엄연한 비즈니스다. 자신이 새롭게 해석한 백조의 호수를 니나가 제대로 소화해주지 않으면 그의 비즈니스는 참담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니나를 잔인할 정도로 거세게 몰아붙인다. 니나가 힘겨워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그는 주연 자리를 라이벌인 릴리에게 주는 듯 한 제스춰를 보여 니나를 미치게 만든다. 또 이럴 때마다 자신에게 와서 매달리는 니나에게 숙제를 하나씩 내준다. 그는 그녀를 매혹적인 흑조로 만들기 위해 그녀의 성적인 욕망을 일깨운다. 그는 그녀와 격렬한 키스를 하고 거침없는 스킨십을 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자위행위까지 주문한다. 그녀는 그의 의도대로 일깨워진 욕망을 서서히 느끼지만 이런 류의 욕망은 순진한 그녀에게는 너무나 낮설다. 욕망은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자에게는 만족을 주지만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정신적 부담과 감정적 혼란만을 안겨주게 마련이다. 니나는 토마스의 거침없는 도발이 있을 때면 거의 예외없이 감정적인 혼란에 빠진다. 이 영화에서 토마스는 유능한 연출자이자 비즈니스맨이지만 니나에게는 참으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이 영화 최고의 악역이라 할 수 있다.



니나의 라이벌인 릴리는 천성적으로 자유분방함을 타고났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니나와는 매우 반대되는 사람이다. 자신의 욕구에 대해 솔직하고 그것을 추구함에 있어 거리낌이나 망설임이 전혀 없다. 그녀는 니나를 친구로 대하지만 니나에게 그녀는 자신의 주연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다. 니나는 그녀를 경계하지만 그녀는 니나에게 접근해 일깨워지긴 했지만 너무나 낯설었던 욕망을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녀는 분명 니나에게 좋은 친구였고 니나도 이것을 알고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매혹적인 흑조 역할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발레리나였다. 그녀의 몸에 배어 있는 자유분방함은 단장 토마스가 만들려고 하는 백조의 호수의 흑조역할에 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린다. 바로 이 점이 니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발레단의 전 수석 발레리나 베스다. 그녀는 니나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존재다. 토마스에게 버림 받은 그녀는 니나에게 미래의 자화상 같은 존재다. 요령 있는 사람 같으면 베스를 보고 완벽주의의 허상을 깨닫겠지만 고지식한 성격의 니나는 오히려 더 배역에 집착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 솟아오르는 그녀에 대한 연민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네 사람과의 접촉 후에 니나는 점점 더 강박적으로 백조의 호수 주연 자리에 집착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아의 분열 증세도 심해진다. 그 증세가 극에 달했을 때 그녀는 마침내 백조의 호수 공연에 임하게 되고 백조 파트를 끝내고 들어간 자신의 분장실에서 라이벌 릴리를 보게 된다. 강박증으로 인한 정신분열증세가 마침내 환상으로 나타난 순간 그녀는 이성을 잃는다. 릴리를 살해하고 무대에 나간 그녀는 마치 신들린 듯 흑조의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다.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마지막 연기를 끝내고 그녀가 내뱉는 말 한마디...

 

" I was perfect....."



그녀는 비로소 만족을 느끼지만 죽어가고 있다. 그녀의 허리에서 붉게 번져가는 피.... 그녀의 강박증이 만들어낸 허상에 속아 자신을 찌른 것이다. 이 장면은 완벽주의의 허무함을 잘 보여준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지점에 서고자 했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뼛속까지 전달되는 느낌이다.

 

영화 '블랙 스완'은 스토리 면에서도, 연출이나 영상 면에서도 완성도가 대단히 높은 작품이다. 이 영화를 봤던 토요일 밤은 내게 매우 특별했다.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이렇게 강렬하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고조되다가 그것이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클라이막스를 맞이한다. 시각적으로 제대로 표현된 내적 갈등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에서 제대로 즐겨야하고 배워야 하는 고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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