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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리뷰/영화는 인생이다

밀리언달러 베이비 - 이것이 캐릭터의 힘이다

모피어스 김 2017. 10. 23. 14:23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내게 캐릭터 구축이라는 것이 뭔지 가르쳐준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본 후부터 난 캐릭터라는 것에 대해 강박적으로 천착하게 되었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건 발상 이후엔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도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했나를 유심히 보게 되는데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내게 캐릭터 설정에 대한 숙련된 교관의 시범이자 교과서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매기(힐러리스웽크분)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연 두 사람이 나온다. 바로 프랭키(클린트이스트우드분)와 스크랩(모건프리맨분)이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두사람의 캐릭터 설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알뜰하며 꼼꼼한 성격의 프랭키... 까칠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 노령의 트레이너는 뜻밖에도 속 깊은 정을 품고 있다. 약간의 지적인 허영심도 있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 주변에는 대개 사람이 없다.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로 사람을 질리게 만들기 딱 알맞은 사람... 그가 왜 노년에 가족도 없이 혼자 지내는지를 그의 성격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에겐 딸이 있지만 그는 딸에게 외면 당한다. 다른 사람 모르게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절치부심 노력하지만 큰 상자 하나 가득 차도록 쓴 편지는 번번이 되돌아온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내면에는 그의 딸이 채웠어야 할 빈 공간이 있었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마음의 공간.... 그 '빈 공간'이 후에 그와 매기와의 관계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런 그의 옆을 묵묵히 지키는 전직 복서, 스크랩.... 세상에서 유일하게 프랭키의 속 깊은 정을 이해하는 사나이... 털털하고 인정많은 그의 성격은 사람을 아주 잘 품는다.  이런 성격의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은 가교의 역할이다.

 

까칠하고 고지식한 성격의 프랭키가 평생 지도해본 적도 없는 여성 복서를, 그것도 운동선수로는 늦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30대의 나이에 접어든 매기를 순순히 받아줄 리 없었다. 그러나 매기는 뒤늦게 깨달은 복싱에 대한 집념과 열정을 그냥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의 꿈은 강력한 멘토의 가르침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프랭키는 한 번 안 된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래서는 서로간의 접점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스크랩과 같은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프랭키는 계속 매기를 외면하고, 매기는 계속 자신을 제자로 삼아달라고 버티는 바로 이 상황에서 스크랩이 이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스크랩이라는 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다.





프랭키와 스크랩... 이 두사람의 관계를 한 번 보자. 이 두 노인은 허구헌날 서로를 씹어댄다. 그러면서도 항상 같이 지낸다. 속 깊은 정을 공유한 사이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크랩이 허구헌날 잔소리를 퍼부어대고 까칠하게 구는 프랭키의 옆을 지키는 이유는 마지막 시합에서 그의 실명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고 막으려 애쓴 사람이 프랭키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이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까칠한 성격상 험한 소리를 내뱉고 후회하기 쉬운 프랭키에게 스크랩은 종종 비서 역할도 해주고 대변인 역할도 해준다. 주인공인 매기도 스크랩이 아니었다면 프랭키의 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매기는 서른이 넘어 복싱을 하겠다고 나선 신출내기였다. 그녀는 트레이너로서의 프랭키의 자질을 알아보고 그에게 다가섰지만 까칠한 성격의 프랭키가 순순히 받아줄 리 없었다. 그러나 매기도 만만치 않았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 자라 일찍 독립한 매기는 그 끈기와 뚝심 하나는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매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명 트레이너였던 프랭키와 연결해주는 사람이 바로 스크랩인 것이다.




이 세 인물의 캐릭터 설정에서 이미 이 영화의 성공은 보장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입체적이고 기가 막힌 캐릭터 설정이다. 이 세사람의 만남과 인연을 필연으로 만든, 정말이지 정교한 설정이다. 

 

스크랩이 만들어낸 듀오... 노련함과 풍부한 경험을 갖춘 트레이너 프랭키와 뚝심의 노처녀 매기는 오랜 훈련 끝에 드디어 일을 낸다. 매기의 승승장구... 그리고 그녀에게 나타나는 호적수. 매기는 이 반칙전문 챔피언에게 치명타를 맞고 목이 부러지고 만다. 그리고 가족에게 버림 당한다.



바로 이 일이 있은 후에 이 영화의 명장면이 나온다. 매기의 불행을 지켜보는 프랭키의 가슴앓이... 자신을 외면한 딸이 채우지 못했던 그 '빈 공간'을 어느새 채워버린 매기를 바라보며 프랭키가 느꼈던 가슴 속 아픔! 그 아픔이 스크린 밖까지 전해져오는 듯 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표정 연기를 보고 있노라니 캐릭터의 힘이 무엇인지 정말 절실하게 깨달아졌다. 그 표정을 잡은 사진이 있었으면 했는데 그런 사진이 없다....-_-;;;;;;;;;;;;;;; 

 

비록 까칠하지만 진실하고 속 깊은 프랭키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그 장면에서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에게 왜 매기가 밀리언달러 베이비인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갘동이 무엇인지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모건 프리맨의 나지막한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잔잔한 영화지만 참 강렬한 감동을 안겨준다. 외출을 하기가 꺼려지는 날씨에 따뜻한 방안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한 잔과 함께 본다면 제격 아닐까?

 

자료를 찾아보니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폴 해기스라는 분이 썼다. 이 탁월한 캐릭터 설정을 보고나니 그분의 얼굴을 보고 싶어져서 찾아봤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제위 중에서 캐릭터 중심의 시나리오를 쓰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 영화를 강추한다. 탁월한 캐릭터 설정의 전형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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