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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구축된 캐릭터의 힘 - 여인의 향기 본문

스토리 리뷰/영화는 인생이다

잘 구축된 캐릭터의 힘 - 여인의 향기

모피어스 김 2017. 10. 22. 17:40


'여인의 향기'는 막강한 캐릭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봤을 때 느꼈던 그 강렬한 캐릭터의 힘이 영화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 잘 구축된 캐릭터와 알 파치노라는 명배우의 열연, 이 환상적인 조합이 이 영화의 명성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과 극은 하나다'라는 말이 있다. 남자고 여자고 모두 자신과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한테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자신과 정반대 성향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처음에는 충돌이 있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무척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나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일정 시간 계속되면 자신은 갖지 못했지만 그 사람이 가진 특성이 자신의 빈 구석을 채우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둘의 관계는 매우 특별한 것으로 바뀐다. 끊임 없이 상호교감을 가지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이것이 행동과 삶의 변화로 연결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 '여인의 향기'는 그렇게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남자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심적, 외적인 갈등을 잘 그려낸 영화다.



프랭크(알 파치노분)는 괴팍한 성격의 퇴역 군인이다. 군에 있을 때 수류탄 폭발 사고로 실명을 하는 불행을 겪었다. 실명만 아니었다면 세상을 희롱하며 희희낙낙 삶을 누렸을... 능구렁이 열댓 마리는 족히 들어간, 세상사에 아주 노련한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삶과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품고 있다. 프랭크의 이런 면이 가장 잘 표현된 장면이 바로 그 유명한 탱고춤을 추는 장면이다.



어수룩한 찰스를 억지로 끌고 간 뉴욕의 한 호텔에서 만난 미지의 여인과 춘 이 열정적인 탱고 장면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강렬한 삶과 사랑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난생 처음 본 여인을 단번에 매료시킨 프랭크의 이 열정이야말로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실명은 분명 핸디캡인데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아이러니칼하게도 그것을 프랭크의 열정을 강렬하게 표출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하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쯤 되면 가히 예술의 경지에 오른 설정 솜씨라 할 만 하다.

 

프랭크는 영화가 플레이되는 내내 자신의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이 열정 때문에 힘들어 한다. 가슴 속 열정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 답답함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반면 찰스(크리스 오도넬분)는 지역 명문고교의 모범생이다. 정말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어수룩한 인물이다. 하고 싶은 건 뭐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프랭크와 정반대로 그는 매사에 소극적이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데 있어 지나치게 자기자신을 억누르는 스타일이다. 자신의 욕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묻어두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면서도 대쪽 같은 강직함이 있다. 그래서 교장을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자들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이렇게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프랭크와 찰스의 조우가 이루어지고 세상사에 닳고닳은 프랭크가 어수룩한 찰스를 자신의 마지막 뉴욕 여행에 끌고 가면서 이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펼쳐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찰스는 자신이었다면 백만번 망설이고 있었을 일을 너무도 시원스레 해치우는 프랭크에게 서서히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프랭크가 난생 처음 본 여인과 너무나도 멋지게 탱고춤을 추는 것을 보고 시쳇말로 뻑 가게 된 것이다. 자신은 상상 속에서만 하는 일을 장님이면서도 대담하게 해내는 프랭크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한편 프랭크는 유약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위치를 끝까지 고수하는 찰스의 강직함과 순수함에 끌리게 된다. 장님이 된 이후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가는 것을 경험했던 그에게 찰스의 이런 면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만드는 치료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프랭크와 찰스는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에 대해 인간적인 신뢰와 애정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프랭크의 자살시도장면에서 찰스가 프랭크의 자살을 막으면서 둘의 관계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발전해간다.

 

이 대목에서 찰스는 참 인상적인 대사 한마디를 날린다. 권총을 가지고 설쳐대던 프랭크가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만 대보라고 하자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당신처럼 탱고를 잘 추고 페라리를 환상적으로 모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가진 재능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도 강하게 마련이다. 그런 프랭크에게 삶을 다시 시작할 동기를 제공해준 한마디였다. 언뜻 보기엔 그리 인상적이지도 강렬해보이지도 않는 이 한 마디에 프랭크는 마음을 돌이킨다. 그러나 난 프랭크의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프랭크가 왜 이 한마디에 마음을 돌이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찰스의 만류로 삶을 다시 시작한 프랭크는 찰스의 고민거리를 해결해주리라 결심한다. 그래서 찰스의 학교 교장이 소집한 전체 상벌위원회 모임에서 좌중을 쥐락펴락 하는 말솜씨로 찰스를 곤경에서 구해낸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끝난다.



김수현 선생이 '진실로 입체적으로 잘 구축된 캐릭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했는데 이 영화는 정말 그 표본이 아닌가 생각된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을 보는 듯 한 입체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캐릭터.... 간혹 캐릭터가 이야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극단론자들도 본 적이 있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 이해가 갈 정도다. 역시 well-made story는 well-made character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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