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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사유의 적, 피로사회

모피어스 김 2017. 12. 11. 15:43

늦은 밤 퇴근길 우리나라의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빈다. 

지하철을 타면 피로에 찌든 사람들이 깜빡이는 형광등의 조명 아래 기계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 제일 많고, 뉴스를 보는 사람, SNS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도 꽤 된다. 

지하철 안에서까지 업무관련 서류를 검토하는 직장인과 강의를 요약한 노트를 펼쳐놓고 공부를 하는 수험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여유'라는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이다. 

늦은 밤 지하철은 초과근무가 일상화 되어 있는 피로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장소다. 

2016년 OECD가 발표한 고용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평균인 1766시간보다 무려 347시간이나 많다고 한다.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잡고 계산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무려 2달이나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사람이든 정신과 육체에 피로가 몰려오면 '사유'라는 것은 귀찮은 일이 된다. 더 심하게는 '팔자 좋은 일'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또 노벨문학상은 뒷날 기약... 척박한 독서문화 과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기사를 읽고 나니 씁쓸한 기분이 됐다. '척박한 독서문화'라는 말에 반감이 생겼다. 

이것도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모조리 개인의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자들의 관점이 이 기사에도 반영된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거나 현재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에게 진정 지적인 욕구가 없을까? 그들이라고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사유하는 여유와 기쁨이 뭔지 모를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같은 피로사회에서 '척박한 독서문화'라는 말은 매우 섣부른 판단의 결과다.

그 기사를 쓴 기자의 말마따나 '척박한 독서문화'는 개인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독서와 사유를 '팔자 좋은 일'로 만든 사회의 문제일 수도 있다. 솔직히 난 후자의 측면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야근이 일상화된 직장인, 하다못해 학생들 마저도 수능과 취업 때문에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사회에서 '척박한 독서문화'를 논하고 그것 때문에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것 아닌가? 

세계적인 작가는 풍부한 국내 독자층을 형성할 수 있어야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독자층을 형성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삶의 여유가 없다면 그들에게 왜 책을 읽지 않느냐고 질책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일방적으로 요구 당하는, 매우 부당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사람들이 독서와 사유의 기쁨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바삐 달려야 하는 경쟁사회일수록 방향에 대한 고민은 더 중요해진다. 

한정된 시간과 돈으로 삶을 영위해나가야 하는 상황일수록 투자대상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때 독서와 사유를 통해 얻어진 삶의 지혜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간혹 이것은 삶의 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독서와 사유는 자기자신을 채우는 기쁨을 가져다준다. 

창가에 놓아둔 화분에 비료와 물을 주는 것처럼 사람의 내면에도 새로운 생각과 시선, 그리고 정보가 공급돼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삶은 정체된다. 

이것은 사람에게 정확한 방향과 아울러 내적 동기를 제공한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충분한 동기를 가진 사람은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삶에 있어 자발성은 에너지의 근원이다. 그것은 종종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매일 출퇴근 길에 책을 든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출퇴근 길의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 또는 손잡이를 붙들고 서서 조금은 여유 있는 얼굴로 독서를 하는 사람들을 좀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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