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스토리 리뷰/소설 라이브 (8)
김작가의 i.love.Story
비굴함이 깃든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투다.이걸 어디서 들었더라..아하.. 이제야 기억이 난다.그 옛날 가끔씩 찾아오는 학부모들에게 촌지를 받으면서도 아이들 앞에서 몽둥이를 들고 훈계를 일삼던 바로 그 목소리다. 작가 임현의 단편소설 '고두'는 이런 목소리로 시작된다. '오랫동안 전파상을 운영했던 내 아버지는 다리를 절었단다.' 도덕적인 우월함이 은근히 밑바닥에 깔린 친절한 화자의 말투.. 처음에 난 이 말투가 거슬렸다. 왜 이런 톤으로 가는걸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계속 읽었다. 화자는 전형적인 꼰대인 자기 아버지가 싫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그런 삶을 살지 않겠노라 결심을 했노라는 제법 비장한 고백도 한다. 그랬던 동네 전파상집 아들은 세월이 흘러 윤리 선생이 된다...
기욤 뮈소 저 밝은세상 누구나 되돌이키고 싶은 과거가 있지 않을까? 가슴 속 깊이 숨겨둔 과거의 회한들... 가끔씩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약간의 여유를 찾았을 때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후회할 짓은 하지도 말았어야 했는데 무슨 연유에선지 기어이 그 일을 저질렀고 그 일은 두고두고 아픈 기억이 되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만약 타임리프 주식회사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에게나 거액의 돈만 지불하면 단 한 번만이라도 과거 원하는 시점에 다녀올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가진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는 가슴 속 회한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성업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곧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겠지만 말이다.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이..
조남주 저 민음사 '82년생 김지영'은 평범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80년대생 여성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슬픔의 이유가 된다. 이런 삶이 우리시대 여성들의 전형적인 삶이라니...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듯 했다. 조남주 작가도 이렇게 말한다. "자꾸만 김지영씨가 진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들, 그리고 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쓰는 내내 김지영씨가 너무 답답하고 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랐고, 그렇게 살았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82년생 김지영'이 슬픈 것은 그 리얼리티 때..
히가시노 게이고 저 현대문학 누구에게나 삶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아무런 고민도 없이 살아왔다면 그것은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저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을 방관한 것이 아닐까?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고민이 있다. 거리에 나가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들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다. 가끔씩 모임에 나갈 때가 있다. 간만에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면 너무나 반갑고 둑이 터진 듯 갖가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저렇게 할 얘기가 많은데 어떻게 참고 살았나 싶을만큼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유난히도 허세가 심한 친구가 한 명 쯤은 끼여 있게 마련이다. 철 모를 때는 그 친구를 부러워했다. '하는 일이 잘 되는 모양이네....
저자 정세랑 창비눈이 오는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세상의 풍경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진 적이 있었다. 날마다 보는 풍경인데.. 왜 그랬을까? 시장통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길목에서 호떡을 구워 파는 아주머니와 채소 몇 가지를 놓고 쭈그려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는 할머니가 보였다. 오토바이에 짐을 가득 싣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아저씨와 꼬치구이를 파는 노점상 리어카 앞에서 콧등에 소스가 묻은지도 모르고 야무지게 새김질을 하고 있는 어린 아이도 보였다. 아마도 말처럼 쉽지 않은 삶을 체감하고 있던 그 시절, 나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저들도 나처럼 발버둥치며 살고 있구나 하는.. 그러면서도..
저자 : 정유정 출판사 : 은행나무읽는 내내 감탄했다. 차원이 다른 필력과 치밀한 스토리 구성은 짧지 않은 분량을 막힘 없이 정주행하게 만들었다. 이 치열함과 에너지는 여성작가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야기는 숨가쁘게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마치 인간성의 현실을 제대로 발가벗겨 보여주고야 말겠다고 100년 동안 칼을 간 듯한 문체다. 이 가멸찬 이야기에서 작가는 '생명'에 대해 말한다. 자신도 생명체 중 하나이면서 다른 생명체는 존중하지 않는 인간성의 현실에 대해 말한다. 작가는 이른바 '빨간 눈'이라 불리는 인수공통전염병을 통해 인간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을 동급으로 놓는다. '화양'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사람들도, 개들도 똑같이 이 정체불명의 전염병으로 죽어간다. 이것을 통해 작가는 인간이나..
저자 : 김영하 출판사 : 문학동네 '살인자의 기억법'은 최근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개봉된 작품이다. 영화도 재미있지만 난 이 작품은 소설로 읽어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그래야 이 작품과 작가 김영하의 본령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므로.. 이 작품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된다. 외부와 단절된, 혼자만의 특별한 즐거움을 누리는데 젊음을 다 보낸 한 연쇄살인범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이 펼쳐진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일이 너무나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그로테스크한 연쇄살인범의 삶과 일상이 평범한 사람의 그것처럼 나열되기만 했다면 이 작품의 가치는 반감됐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에 유머를 섞는다. 이런 식이다. 주인공인 김병수가 은희에게 박주태를 만나지 말라고 설득하는 장면이다. ..
저자 : 정유정 출판사 : 은행나무 작가 정유정은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부조리함으로 가득차 있다. 이 정도의 사람이면 그래도 집 한 채는 가지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날마다 척박한 현실에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냉혹한 현실은 종종 우리를 반전의 상황으로 몰아간다. 작가가 말하는 '그러나'의 상황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