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스토리 리뷰 (41)
김작가의 i.love.Story
지난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장소는 판문점이었고 회담은 성공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은 첫만남부터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 뒤 잠시 동안 가볍게 이 선을 넘나들었다. 난 이 장면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순간 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바로 이수혁(이병헌 분)과 정우진(신하균 분)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침뱉기 장난을 하는 장면이다. 이미 인간적인 교분을 쌓은 두 사람에게 이 선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이미 그 선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아무리 거대한 이념이 그어놓은 선이라도 인간적인 신뢰만 있으면 언제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영화 '한공주'는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이것은 2004년 밀양과 창원 지역의 남학생 115명이 여중생들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으로 당시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사건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처리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야만성과 미개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어지는 가해자 가족의 협박과 '밀양의 물을 다 흐려놓았다'는 경찰관의 폭언은 당시 수사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나는 영화 '한공주'의 시선이 참 좋다. 이 영화는 피해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세상은 피해자에게 참으로 모질고 가혹하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기조차 싫은 공주(천우희분)에게 수사관들은 사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라고 다그친다. 병원에서도 여의사가 진료해줄 것을 요청하지만 거..
살면서 가장 비참해질 때는 언제일까? 아무리 봐도, 어느 모로 봐도 내가 못난 사람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스스로 봤을 때도 자신의 몰골이 너무나 한심해보일 때... 사람들은 이때 속절없이 무너진다. 바닥을 치는 자존심이 마지막 출구를 찾고자 할 때 사람들이 많이 하는 선택이 있다. 그것은 바로 떠나는 것이다. 어디건 상관없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그것으로부터 잠시라도 탈출해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은 그렇게 길을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다. 트럼펫 연주자인 현우(최민식분)는 뮤지션으로서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교향악단 연주자가 되고자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그래도 그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과 순..
공포영화에는 공식이 있다. 처음에는 아주 평온한 일상이 펼쳐진다. 그러다가 뭔가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관객들은 긴장하기 시작하고 악령이나 귀신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다. 영화 전반부까지 악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러내도 옷자락 정도 보여주고 사라진다. 공포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악령이나 귀신이 모습을 드러내기 바로 직전이다. 그것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존재는 느낄 수 있을 때, 그리고 그것들이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음을 알게 됐을 때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등줄기에서 찬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때 공포는 극에 달한다. 사람은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무섭게 생긴 악령이나 귀신이라도 일단 보고나면 무서움이 덜해진다. 그래서..
인간과 야수의 차이는 뭘까? 가끔씩 그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야수는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 매우 정직한 존재다. 야수는 생존을 위해 살육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는다. 야수가 벌이는 살육의 현장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만큼 처참하다. 그러나 야수는 그 과정을 통해 생존을 보장 받는다. 그것은 잔혹할지언정 오로지 생존을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는 순수하다.인간은 이와는 좀 다르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인간은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서도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야수보다는 세련된 방식으로 살육을 한다. 그렇다고 인간의 본성이 야수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오늘 소개하려는 이 영화 '더 그레이'를 보면 늑대들에게 쫓기던 오트웨이(리암 니슨분) 일행이 늑대 한 마리를 잡아 구..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다. "이걸 재미있다고 해야 하는거야? 재미없다고 해야 하는거야?" 나는 웃고 말았다. 그 분이 왜 이런 얘길 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영화의 완성도 자체는 괜찮은 것 같은데.. 이야기도 재미있는 것 같은데 관객의 반응은 떫떠름한 경우가 있다.이것은 보통 관객이 감정이입할 지점을 찾지 못했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영화 '7년의 밤'은 전체적으로 원작의 무게에 눌려 있다.허긴 그도 그럴 것이 국내작가 중 서사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정유정의 작품이니...원작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정유정의 문체가 갖는 흡인력과 그녀의 숨막히는 서사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이다.그런데 원작에서 느끼는 재미를 관객들은 비교적 잘 시각화된 영상을 보고도 느끼지 못한 것 같..
봄은 가장 허무하게 지나가는 계절이 아닐까?넓은 들판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피자마자 속절없이 떨어지는 벚꽃처럼 그렇게 가는 계절이 봄이다. 가는 것 같지도 않게,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계절.. 그래서 봄은 상실의 아픔을 경험하는 계절이다.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 있다. 바로 이 영화 '봄날은 간다'의 동명 엔딩 타이틀곡이다. 자우림의 김윤아가 부른 이 곡은 상실의 아픔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사랑이 남기고 간 빈 공간.. 그 메울 수 없는 공백을 가슴에 안고 봄날의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정을 우리는 노래가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에 느낄 수 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지만, 따스한 햇살이 온 대지를 내리쬐지만 이 사람은 봄을 느낄 수 없다. 봄이 왔지만 봄을 느낄 수 없는 ..
인연의 얄궂음과 불가사의 인생은 내 뜻대로 안 된다. 인생에는 정말이지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인연'이다. 내 마음이 가는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에게 호감을 표시해오는 사람은 내가 싫다. 인연은 그렇게 엇갈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난다. 엇갈린 인연에 대한 아쉬움과 뜻밖의 인연에 대한 놀라움에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이 운명은 우리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속 한 남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자신만을 믿고 사는 여자 옆에서 잠들지 못하는 바로 그 남자... 남자들은 옛사랑을 잘 잊지 못한다. 많은 남자들이 엇갈린 인연 속에서 보내버린 옛사랑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 그들은 아마 죽어 이 자연의 일..
인생은 짧고 영화는 많다. 고로 아무 영화나 봐서는 안 된다. -by 모피어스 김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로데오 경기장에서 시작돼 로데오 경기장에서 끝난다. 장소는 같지만 주인공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분)의 모습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영화는 한 남자와 두 창녀의 거친 숨소리로 시작한다. 우드루프는 로데오 경기장 관중석 아래 은밀한 공간에서 창녀들과 성관계를 한다. 이것은 마초적 남성성과 쾌락을 추구하는 그의 삶이 보여주는 일면이다. 그는 철 구조물 틈새로 보이는 카우보이들의 도전을 짜릿한 쾌감을 즐기며 바라만 볼 뿐이다. 이 순간 그는 텍사스의 놈팽이였다. 그러나 엔딩에서 우드루프는 진짜 카우보이가 된다. 그는 잔뜩 독이 오른 소 등 위에 올라탄다. 그는 소 등 위로 졸라맨 밧줄을 단단히 ..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새파란 청춘 하나를 죽여놓고 그들이 지껄인 헛소리였다.그들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이 죽음이 가져올 어마어마한 변화를...1987년... 난 그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겠다는 이른바 '6.29선언'이라는 것을 했다.그리고 그해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대통령 선거를 한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이번에야말로 야당으로 정권을 교체할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그러나 정권은 바뀌지 않았다.사람들은 적잖이 실망스러워했지만 그때부터 5년마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치러졌다.이후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일정이 됐다. 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씨는 그의 저서인 '정치의 몰락'에서 이렇게 말했다."198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