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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그렇게 왔다 - '꽃피는 봄이 오면' 본문

스토리 리뷰/영화는 인생이다

봄은 그렇게 왔다 - '꽃피는 봄이 오면'

모피어스 김 2018. 6. 30. 00:11

살면서 가장 비참해질 때는 언제일까?
아무리 봐도, 어느 모로 봐도 내가 못난 사람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스스로 봤을 때도 자신의 몰골이 너무나 한심해보일 때... 사람들은 이때 속절없이 무너진다.
바닥을 치는 자존심이 마지막 출구를 찾고자 할 때 사람들이 많이 하는 선택이 있다.
그것은 바로 떠나는 것이다. 어디건 상관없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그것으로부터 잠시라도 탈출해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은 그렇게 길을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다.
트럼펫 연주자인 현우(최민식분)는 뮤지션으로서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교향악단 연주자가 되고자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그래도 그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과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한다.
여기까지는 견딜 만 했으나 문제는 그의 연인인 연희였다.
그녀야말로 그를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비루한 현실에 그녀까지 끌고 들어가고 싶지 않다.
이것이 그가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그녀를 보내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녀는 힘든 현실이라도 그와 함께 하고 싶어한다.
그녀는 그에게 매달려보기도 하고 반협박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청한 오디션에서도 떨어지자 현우는 미련 없이 떠난다.
그렇게 그는 강원도 탄광촌에 있는 한 중학교의 관악부 지도교사로 부임한다.
그러나 그는 곧 그곳마저도 그가 떠나온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합지졸처럼 모여 있는 아이들...

이제는 녹슬고 빛이 바랜 과거 관악부의 트로피와 언제 재정지원이 끊기고 강제 해산될 지 모르는 상황 속에 있는 그들의 모습은 그를 난감하게 한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서 그는 뜻밖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순수한 열정이 서서히 그의 내면 속 무언가를 흔들어 깨우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위기 속 관악대를 다시 살려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교감하며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그는 도망쳐온 현실과 다시 대면할 용기를 얻게 된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의 미덕은 감동적이지만 감동을 쥐어짜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심하게 툭툭 던져지는 장면들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그냥 보다보면 가랑비에 옷섶이 젖듯 잔잔하게 스며드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난 지금도 제자 용석의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탄광 입구에서 관악대가 행진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누가 막장에서 탄을 캐다 나오는 광부들을 위해 행진곡을 연주하겠는가?

비를 맞으며 지휘봉을 휘두르는 현우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지만 대배우 최민식은 오버하지 않고 이 장면을 진솔하게 연기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주인공 현우라는 캐릭터다.
이현우라는 인물은 별 볼 일 없는 트럼펫 연주자지만 진솔하고 푸근한 인간미의 소유자다.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그는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고집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제자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는 업소에 나가 색소폰을 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쿨함이 있다.
질투심에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른 주호에게도 그는 씩 웃으며 한 마디를 건넨다.

"너 주먹 세더라.."

최민식은 대배우다운 노련함으로 이 역할을 힘을 빼고 편안하게 연기한다.
그의 전작들이 너무나 강렬했음에도 나는 이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난 개인적으로 최민식이 출연했던 영화 중 이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는 2004년 개봉했다.

꽤나 오래된 영화지만 봄이 오고 가는 길목에서 가슴 속에 따뜻한 감동을 남기고 싶을 때 볼 만 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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