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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달리는 이야기의 허무함 - '7년의 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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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달리는 이야기의 허무함 - '7년의 밤'

모피어스 김 2018. 4. 3. 19:25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다.

"이걸 재미있다고 해야 하는거야? 재미없다고 해야 하는거야?"

나는 웃고 말았다. 그 분이 왜 이런 얘길 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완성도 자체는 괜찮은 것 같은데.. 이야기도 재미있는 것 같은데 관객의 반응은 떫떠름한 경우가 있다.
이것은 보통 관객이 감정이입할 지점을 찾지 못했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영화 '7년의 밤'은 전체적으로 원작의 무게에 눌려 있다.
허긴 그도 그럴 것이 국내작가 중 서사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정유정의 작품이니...
원작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정유정의 문체가 갖는 흡인력과 그녀의 숨막히는 서사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런데 원작에서 느끼는 재미를 관객들은 비교적 잘 시각화된 영상을 보고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원작과 영화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주인공의 욕망에서 나온다.
그 욕망이 강렬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 욕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크고 강력할수록 이야기는 치열하게 전개된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 최현수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른다.
아버지가 아들을 구하는 건데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댐의 수문을 여는 건 또다른 문제다.
이 행위가 댐 아래 사는 주민들 수백 명을 수장시켜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어쩌시겠는가?
아무리 아버지가 아들을 구하는 것이라 해도 이것은 너무 엄청난 대가다.

원작에서 정유정 작가는 주인공 최현수가 아들에게 갖는 집착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한다.

크고 작은 실패로 도배되어있는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건진 성공작...
삶에 대한 애착도, 미련도 없었던 그가 삶을 지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아들이었다.
최현수에게 아들 서원은 무력감에 짓눌린 사내가 그래도 삶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것이 충분히 납득되지 않으면 이후 최현수의 행동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는 건 어렵다.
그것이 표면적인 이해에 그치는 순간 이야기는 실패할 공산이 크다.
작가 정유정이 이 작업에 공을 들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오영제가 아들 서원을 노리고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도 최현수에게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쏙 빠져있다.
나처럼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원작을 읽지 않은 대부분의 관객들은 감정이입을 할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최현수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이 장면을 보는 관객들은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쓴다.

'뭐.. 아들이니까...'

그러나 뭔가 강렬하게 와닿는 감정은 느끼지 못한다.
그런 상태로 이야기는 숨가쁘게 진행된다.
지루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뭔가 짜릿하지도 않다.

흔히 원작이 있는 경우 영화가 원작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다.
소설이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첨예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영화보다 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이다.
더구나 정유정 같은 정상급 필력을 가진 작가의 경우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것을 시각화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그 부분을 아예 놓친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정유정은 에필로그에서 이 작품 '7년의 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이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러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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