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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허위와 위선을 가지고 놀다 '고두(叩頭)'

모피어스 김 2017. 12. 28. 00:34

비굴함이 깃든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투다.
이걸 어디서 들었더라..
아하.. 이제야 기억이 난다.
그 옛날 가끔씩 찾아오는 학부모들에게 촌지를 받으면서도 아이들 앞에서 몽둥이를 들고 훈계를 일삼던 바로 그 목소리다.

작가 임현의 단편소설 '고두'는 이런 목소리로 시작된다.

'오랫동안 전파상을 운영했던 내 아버지는 다리를 절었단다.'

도덕적인 우월함이 은근히 밑바닥에 깔린 친절한 화자의 말투.. 처음에 난 이 말투가 거슬렸다. 왜 이런 톤으로 가는걸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계속 읽었다.


화자는 전형적인 꼰대인 자기 아버지가 싫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그런 삶을 살지 않겠노라 결심을 했노라는 제법 비장한 고백도 한다. 
그랬던 동네 전파상집 아들은 세월이 흘러 윤리 선생이 된다. 촌동네 출신 치고는 출세한 셈이다. 그러니 이제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갈고 닦아온 도덕적 삶의 모본을 멋지게 시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젊은 윤리 선생의 앞길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연주라는 아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연주는 조숙한 아이였다. 그리고 꽤나 예뻤나보다.
젊은 윤리 선생은 이 당돌한 아이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그의 도덕성은 이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도덕이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 앞에 얼마나 속절 없이 무너졌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욕망 앞에 솔직하지 못한 위선자는 가당찮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나를 위선자라고 욕하지 싶겠지. 그러나 나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란다. 미성년자의 몸이나 탐할 만큼 파렴치한이 아니라는 말이다.'

화자는 욕망에 끌려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그 욕망의 대상이 된 연주는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임현의 '고두'는 2017 제8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실려 있는 단편으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예로부터 인간의 허위와 위선은 재기발랄한 작가에게 좋은 놀잇감이 되곤 했다.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어서 허위를 벗어던지지 못한 화자는 작가의 짖궃은 장난에 오랜 세월 애써 외면해왔던 불편한 진실과 대면해야만 한다.

이 작품이 수록된 '2017 제8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임현을 포함한 7명의 젊은 신인 작가들의 단편들이 수록되어있다. 이 작품들을 통해 이들을 만난 것은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앞으로 이들이 펼쳐보일 작품세계가 이 책 안에서 꿈틀대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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