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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리뷰/영화는 인생이다

인생이라는 블랙코메디 '살인자의 기억법'

모피어스 김 2018. 1. 3. 00:59

누군가 날 가지고 노는 듯 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고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하는 일마다 꼬이고 마치 뭔가가 따라다니며 내 일을 방해하는 듯 한 느낌을 가져본 일이 없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얄궃은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본 것이다.


인생이 짖궂은 장난을 걸어올 때가 있다. 
나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정말 중요한 순간에 제대로 초를 치는 것이다. 

일생일대의 순간에 만나서는 안 될 인간과 맞닥뜨린다. 이제 돈 좀 벌어보려 했더니 다리가 부러진다. 
어쩌다 만난 이상형의 여자와 말 좀 터보려 하는데 배 속에서 급한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이런 경우를 두고 불가항력이라 하던가?

일이 꼬이려면 그렇게 꼬인다. 인생은 간혹 그런 변태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람을 곤란한 지경에 몰아넣고는 뒤돌아서서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는 불한당 같을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묻지 마시라.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얄궂은 인생은 연쇄살인범 김병수에게 장난질을 친다. 그것도 아주 고약하게.. 
17년전 마지막 살인을 저지르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다. 
이후 그는 자꾸 기억을 잃어버리는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견디다 못한 그는 병원을 찾게 되고 의사는 그에게 치매 판정을 내린다.

젊은 시절 그는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인간 쓰레기들을 죽였다. 그리고 대숲에 묻었다.
그는 심판주였다. 그는 타인의 생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자였다.
그렇게 살아온 그의 앞에 민태주가 나타난다. 뱀의 눈을 한 살인마... 그는 민태주가 자신과 같은 족속임을 단박에 알아본다.
포식자와 포식자의 만남이다. 포식자들은 만나면 영역 다툼을 벌이게 마련이다.

민태주는 그의 딸인 은희를 노린다.

김병수에게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민태주를 죽이고 딸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치매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치매는 인생이 그에게 주는 고약한 선물이었던 셈이다.
자꾸 끊기고 뒤섞이는 기억 때문에 그는 혼란에 빠진다.
그의 약점을 알아챈 민태주는 함정을 파고 그와 은희가 여기에 걸려든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려진대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원작의 분위기는 잘 살렸지만 사실 결말은 조금 실망스럽다.
감독은 두 포식자, 김병수와 민태주의 대결에 좀 더 공을 들였어야 한다.
두 야수는 은희를 놓고 싸우지만 그 과정은 치밀하지 못하다.

은희는 김병수의 딸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두 야수의 싸움에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엔 부족해보인다.
은희는 김병수에게 좀 더 특별한 존재여야 한다.
그래야 그 사이를 민태주가 파고들 때 강렬한 서스펜스가 나올 수 있다.
이 구도대로라면 빼앗으려하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의 에너지가 쌓이고, 쌓이고 또 쌓였을 때 둘의 대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은희가 단순한 미끼로만 사용되고 두 사람은 인적 드문 숲 속 허름한 별장에서 마지막 일전을 벌이지만 이 클라이막스는 2% 부족한 느낌이다.

스릴러의 성공 여부는 긴장을 집요하게 쌓아가고 그것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터뜨릴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긴장을 쌓아가긴 하지만 뭔가 무딘 느낌이다.
가파른 상승곡선을 만들어내기엔 추진력이 부족해보인다.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도 못한 케이스다.
원작의 탄탄함을 감안하면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그러나 인생에 농락 당하는 연쇄살인범 김병수역을 맡은 설경구의 연기는 정말이지 탁월하다.
그는 김병수라는 인물이 갖는 혼란스러움과 그로테스크한 내면을 잘 표현했다. 
나름 아쉬움을 갖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일정 수준 이상의 긴장과 서스펜스는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원작 소설도 함께 읽어보시길 바란다.
영화와는 다른 결말이지만 인생이라는 블랙코미디를 맛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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