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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상처의 치유_updated

모피어스 김 2018. 1. 7. 21:53

그랬던 적이 있었다. 상처 받고 힘들어 거리로 나왔는데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 밝아보였다.

그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갔다. 밝게 웃으며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상처나 고통 따위와는 관계가 없는 이상향의 존재처럼 보였다.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왜 나만 이 모양일까? 힘든 마음을 달래고자 밖으로 나왔는데 누가 소금이라도 뿌린 듯 가슴이 아려왔다. 가뜩이나 어두운 마음에 소외의 고통까지 더해진 것이다.

이것이 혼자만의 오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난 그때 난생 처음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의 길과 퇴장의 길이 불과 한 끗 차이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지금도 난 마음이 힘들면 하염없이 거리를 걷는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모습에 속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면을 충분히 보고 경험한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들도 저렇게 살아…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지금은 거리의 활기가 내게 도움이 된다. 지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럴 만 해서 웃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거리를 걷다가 멈춰서서 쇼윈도우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혼자다. 거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난 혼자다.

난 다시금 깨닫곤 했다. 홀로 거리를 걷는 내 모습은 내 인생의 실존 그 자체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상처도, 고통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 혼자 단독으로 마주쳐서 온몸으로 겪어내야 한다. 처음에 난 이 과정이 몹시도 두렵고 힘들었다.

고통의 시간은 느리게도 지나갔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그때 난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여성의 육감 비슷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던 시선… 혹자가 내게 나만의 착각일 거라고 얘기한다면 솔직히 할 얘기는 없다.

그러나 난 분명히 느꼈다. 그것은 절대자의 시선이었다. 난 지금도 이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신앙이라는 것을 갖고 있는 이유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직접 감독과 주연까지 맡아 열연한 '호스 위스퍼러'라는 영화가 있다.

난 이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상처 입은 영혼이 어떻게 치유되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필그림'이라는 말이 나온다. 필그림은 주인인 그레이스 대신 트럭에 치이는 대형사고를 당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상처가 심하면 모든 것을 거부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필그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필그림은 거칠고 난폭해진다.

깊은 상처를 입은 필그림은 조그마한 자극에도 예민해지고 특히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게 된다.

말 치료사인 톰 부커(로버트 레드포드분)는 우여곡절 끝에 필그림의 치료를 맡는다.

이 치료의 과정에서 명장면이 나오는데 아래 사진이다. 톰은 또 다시 사소한 자극에 놀란 필그림을 풀어준다.

필그림은 미친 듯이 초원으로 뛰어나간다. 톰은 필그림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필그림을 따라간다.

필그림은 초원 한가운데 멈춰선다. 그런 필그림을 톰은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이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간다.

초원 위로 바람이 불고 햇살이 쏟아진다. 그리고 서서히 일몰이 다가온다. 먼 거리지만 필그림은 톰의 시선을 느낀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톰과 필그림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마침내 필그림이 톰의 앞에 선다. 아마도 초원에서 아픔을 삭이고 있던 자신을 기다려준 톰에 대한 신뢰의 표시였을 것이다.

톰은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필그림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그의 고삐를 틀어쥔다. 필그림은 순순히 톰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 것일까? 그것은 진실된 시선에서부터 시작된다.

상처 입은 사람을 진실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한 사람의 존재… 그것이 치유를 가져온다. 그런 사람은 기다릴 수 있다.

그는 상처입은 자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상처 입은 사람은 그 시선을 느낀 순간 자신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초원으로 뛰어나간 상처입은 말 한 마리와 이를 바라보는 사람… 이것이 이 영화의 코어 신(Core Scene)이다.

누구나 상처가 있다. 센 척 하지 마시라.

긍정적인 생각을 한답시고 상처를 부정하지도 마시라.

아파서 견딜 수 없으면 미친 듯이 초원으로 뛰어나가시라.

거기서 아픔을 삭이며 바람을 맞다보면 당신을 변함없이 바라보고 있는 한 시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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