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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모피어스 김 2018. 3. 12. 00:07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씨는 연초 경향신문에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그 동안 한국의 주인 행세를 했던 보수가 급격하게 붕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들이 더 이상 주류의 위치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난 60년간 보수우위 시대를 지탱해온 보수의 히말라야인 일곱 개 기반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지식인, 보수 언론, 문화, 재벌, 권력기관, 기독교, 보수 정당의 물적 토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담론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보수 지식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이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문화계 인사들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광장에서 보수 권력을 조롱한다. 숫자가 너무 많아 (보수 정권은) 리스트를 만들고 관리하기도 버거웠다. 존경받는 (보수) 언론인, 종교인, 기업인도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보수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면 “존경할 인물이 없다” “부패했다” “촌스럽다”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능력도 없다”가 추가됐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성민씨의 분석에 동의한다. 한국의 주류는 교체될 것이다. 그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왔고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보수의 인식은 아직 여기까지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여전히 작금의 현실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있거나 그러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사항은 그저 '희망사항'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성민씨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박근혜 탄핵과 정권교체가 불러온 정치지형의 변화를 들고 있지만 난 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보려 한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사회에 진출했던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사무실 안에서 담배를 피워물고 돌아다니는 팀장급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여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이분들의 재떨이를 소제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 분들은 대부분 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이른바 우리나라의 전후 베이붐 세대라 불리는 세대다. 학교에서야 교수님들을 제외하면 이 세대와 맞닥뜨릴 일이 없었지만 매일 부대끼며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 분들과의 접촉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이분들과 일하는 과정에서 난 이 세대와 우리 세대간에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렴풋한 직관에 불과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은 점점 더 명료해져서 마침내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사고방식의 차이가 확연하게 갈라지는 연령선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구분선이 1965년이 아닌가 생각한다. 1965년을 기준으로 이전에 출생한 세대와 이후 출생한 세대는 사고방식에 있어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물론 지배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 세대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자기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이다. 이전 세대는 자기자신을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반면 그 이후 세대.. 특히 이른바 'X세대'로 불리는 세대부터는 자신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인식한다.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자아관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차이를 불러온다.

전자는 전체주의 또는 집단주의 코드고 후자는 개인주의 코드다. 전자는 개인보다는 전체 또는 집단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후자는 개인의 삶이 있어야 집단도 있다는 식이다.

내가 처음으로 사회에서 맞닥뜨렸던 직장상사들은 젊은 직원들이 개인의 일을 앞세우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단체행동에 빠지는 것은 심각한 일탈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대개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업무를 보거나 회사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을 당연시 했다. 개인의 삶이 소외되는 것은 생존을 위해 받아들여야 할 당위였다. X세대에 속했던 나는 이런 분위기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감히 반기를 들 수 없었다. 이제 사회에 막 진출한 신출내기에게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그로부터 7~8년 후 난 프로젝트의 진행을 맡을 정도의 위치에 올랐다. 내 동기들도 비슷한 시기에 승진을 한 경우가 많았고 그들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우리는 그 동안 일방적으로 희생해왔던 개인의 시간을 되찾는 방향으로 서서히 나아갔다. 일단 퇴근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회식에 가도 1차로 마무리 짓고 귀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때부터 이전 세대와의 갈등이 시작됐다. 하루는 전체 회식에서 어지간히 술기운이 오른 본부장이 우리에게 물었다.

"니들은 집에 꿀 발라놨냐?"

그의 눈에는 잦아지는 정시 퇴근이 기강해이의 조짐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한 번도 회사일을 포기한 적도, 소홀히 한 적도 없었지만 바쁜 업무 속에서도 개인의 삶을 챙기려는 우리의 행동은 이기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회사조직의 일보다는 개인의 일을 우선시하는 우리 세대의 사고를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다시 퇴근시간에 그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얼마 후 회사에는 그의 퇴직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분 세대에도 개인주의자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주류가 아니었다. 그 분세대에서는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 군대 문화를 체험했고 전체주의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주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세대에서는 개인주의자들이 주류다. 더구나 이 세대는 한창 사회에 진출하던 시기에 IMF를 겪었다. 젊음을 조직에 바친 기성세대가 구조조정의 칼날에 가랑잎처럼 날아가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다. 이 세대에게는 개인의 삶보다 조직의 필요를 우선시 하는 사고가 먹혀들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제 우리 세대 사람들 중에 본부장급에 오르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제 회사의 중요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 세대는 퇴직하거나 더 이상 실무에는 관여하지 않는 포지션으로 이동 배치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한국의 기성세대가 전체주의자들에서 개인주의자들로 교체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최초로 개인주의자들이 주류인 X세대가 이제 2~3년 후면 50대에 진입한다. 이들은 앞으로 한국의 정부와 민간 회사 및 주요 조직의 의사결정라인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회분위기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 한국의 보수정치세력을 보면 시대의 흐름이 크게 바뀌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현재의 자신들의 칼라와 스타일을 가지고 더 버틸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친박이 주류인 자유한국당은 차기를 꿈꾸는 모양이지만 그들이 다시 집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사고와 코드는 너무 고루해서 이제 한국사회의 주류로 떠오를 세대를 만족시키기도 어렵겠지만 이들의 개인주의적 사고를 이해하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보수는 재편되어야 하지만 그 작업은 길고도 지난한 작업이 될 것이고 옛 영광을 잊지 못한 자들의 아집은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 코드 자체가 맞지 않는 유권자의 수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을 쓰러뜨린 촛불은 누군가의 조직력과 동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권 퇴진의 의지를 갖고 모인 개인들이 모인 결과였다. 그 규모와 명분은 태극기 세력을 크게 압도했다. 태극기 세력은 '군대여 일어나라'고 외쳤지만 군대는 움직이지 못했다. 이들의 생각에 동의하는 일부 군장성들이 움직였다 해도 실제로 병력을 지휘하는 야전지휘관들은 이들과는 세대 자체가 다르다. 아무리 군대라 하더라도 지금의 젊은 군인들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지휘했던 군대처럼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사회는 이제 새로운 기성세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이전 세대와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세대다. 그들은 개인주의자들이다. 개인주의자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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