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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계절의 흐름, 그리고 시간

모피어스 김 2018. 4. 8. 01:10

내가 용인으로 이사를 온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아파트 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아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선택했다.
조경이 잘 되어 있는 데다가 맞은 편으로 야트막한 야산이 보인다.
이 산과 아파트 단지의 경계선에 철제 펜스가 쳐져 있는데 간혹 고라니가 나타나 바로 그 앞에서 노닐기도 한다.
이곳으로 오기 전 대도시에서만 생활을 했던 나는 이런 장면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청솔모가 돌아다니는 것 정도는 흔히 볼 수 있었으니 내 생애 처음으로 자연과 근접한 곳에 둥지를 튼 결과였다.

이때부터 난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던 것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계절의 변화'였다.
대도시에서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기 힘들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퇴근길에 눈발이 흩날리는 것을 보고서야 겨울이 왔음을 느끼고 TV뉴스에서 어디어디에 벚꽃이 피었더라는 소식을 듣고서야 봄이 왔나보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자고 일어나 창 밖만 내다보면 계절이 느껴진다.
봄을 맞은 산에는 푸른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가까이 가서 보면 나무가지마다 푸른 순이 올라와 있다.
요즘은 벛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보인다.

어느 공간에서든 Navigation을 할 때에는 두 가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바로 목적지와 현재 위치다.
대도시에서 바쁜 삶을 살다보면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만 하기 쉽다.
끊임없이 내 앞에 떨어지는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삶의 모습은 그렇다.
그러다보면 나의 현재 위치가 어딘지 잃어버리곤 한다.
내가 기나긴 시간의 선상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쫓기듯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길을 잃은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계절의 흐름을 보며 삶을 결정했다.
그들에게는 24절기가 있었고 절기마다 해야할 일이 있었다.
그들의 삶은 계절의 흐름을 타고 흘러갔다.
우리보다 느린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들은 많은 유산을 남겼다.

매일 아침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삭막한 대도시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좁은 공간에 거대한 건물들이 촘촘하게 꽂혀있는 그곳은 참으로 비인간적이다.
도시와 자연에서 느끼는 시간의 감각은 다르다.
도시에서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느낌이다.
도시는 시간을 미시적으로 사용하고 흘려보낸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분단위, 때로는 초단위로 인식된다.
그러나 자연 가까이 가면 갑자기 시간이 느려진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거시적이고 계절 단위로,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사용되는 것이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의 삶이 인생을 관조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도시에서 바쁜 삶을 살면서도 난 내 인생 전체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계절의 흐름을 날마다 느끼다보니 난 어느새 긴 호흡으로 내 인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도 난 잠에서 깨면 거실로 나와 창 밖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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