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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모피어스 김 2018. 4. 22. 22:18

"키스? 가족하고 무슨 키스를 해? 여자는 시집 와서 애 둘 낳으면 그때부터는 그냥 가족이야.."

몇 년 전 술자리에서 한 지인이 했던 얘기다.
이 분은 50대 초반이었는데 부인과 키스를 한 지 무려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어지간히 취기가 오른 그가 술기운에 농담으로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그말은 약간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사실인 것으로 보였다.
난 이 분의 말을 들으며 서글픔을 느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생활이 오래되면 부모만 남고 남녀는 사라질까?

한 언론의 관련 기사를 보니 다음과 같은 통계가 나와있다.

'해외 논문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세계 섹스리스 부부 비율은 평균 20% 수준이다. 이에 비해 한국(36%)은 일본(45%)에 이어 두 번째로 섹스리스 부부가 많은 나라로 드러났다. 더구나 50대 이상 부부는 43.9%가 섹스리스인 것으로 파악됐다.'
-2018.04.18 주간경향 '세계에서 두번째로 섹스리스 부부가 많은 한국'

기사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50대 이상 부부의 무려 43.9%가 섹스리스라니.. 절반 가까운 수의 부부가 이미 섹스리스라면 나머지 절반이라고 온전할까? 이것은 사실상 대부분의 부부가 50대에 접어들면 더 이상 서로를 남자와 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저 오랜 결혼생활이 가져온 권태기일 뿐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나는 이것이 한국의 지나친 가족주의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쌍의 남녀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두 사람은 달콤한 신혼을 즐기겠지만 자신이 누군가의 남편, 아내일 뿐만 아니라 한 집안의 사위, 며느리가 됐음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한 요구가 생각보다 크고 부담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부담감은 대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크게 다가온다. 만약 시댁이 가부장적인 질서가 확고한 집안이라면 며느리에 대한 요구사항은 많아질 것이다. 이것은 곧잘 이제 막 결혼한 여성들에게 불편함과 혼란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자신은 분명 한 남자를 선택한 것인데 며느리의 역할이 너무나 큰 요구로 다가올 때 이들은 마치 자신이 선택한 대상이 바꿔치기 된 듯한 괴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크게 느끼는 시기가 바로 명절이다. 이때 부부싸움이 잦아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다 자녀가 태어난다. 아이는 본의 아니게 둘만의 영역인 침실에 최초로 나타난 침입자가 된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침입자는 둘 사이에 당당하게 자리잡는다. 이 순간부터 두 사람은 더 이상 단순한 남과 여일 수 없게 된다. 아이는 두 사람을 부모로 만들면서 가족이라는 확장된 관계로 견고하게 연결한다. 이렇게 결혼 후 침실을 핑크빛으로 물들였던 남과 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

이후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로서의 정체성은 계속 강화된다. 이 즈음 상당수의 가정에서는 둘째가 태어난다. 가족 안에는 부부관계 외에도 형제, 자매 또는 남매의 관계가 추가로 형성된다. 부부는 이 관계를 콘트롤하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이것은 두 사람의 정체성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무시로 둘만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들은 제지를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 남자와 여자는 존재감을 잃게 된다.

다시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남자와 여자는 학부모로 재탄생한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이는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의 학비를 위해 남자는 가열차게 돈을 벌어야 하고 여자는 아이들을 챙기는데 대부분의 시간과 정력을 쓰게 된다. 아이들 중 하나가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이 될 때 쯤이면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자와 여자는 사라진다.

전통적인 가족주의에 한국적인 교육현실까지 더해져 한국의 가정에서 사랑으로 결혼한 남녀는 끝까지 남녀로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시간을 학부모로서 살 것을 요구하는 한국의 가족주의는 남자와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정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국의 가족주의적 관점에서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생각해보자. 남자와 여자가 사라진 결혼생활이 행복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고 학부모가 된다 하여 남자와 여자로서의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적 현실에서 이것은 소외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아무리 결혼생활이 오래됐다 하더라도, 아무리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해도 그 이전에 자신이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훌륭한 부모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의 많은 가정에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혼생활에서 자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여기에는 자식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사는 부모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한국의 가족주의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TV드라마 몇 편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드라마 속 나이 든 부모는 자나깨나 자식 걱정이다. 거기에 남자와 여자로서의 삶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부모로서 자식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식을 낳은 이상 부모로서의 책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꼭 이것을 남자와 여자로서의 삶을 내팽개치고 해야 하는가? 그러지 않고는 지킬 수 없는 것이 부모의 도리인가?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얼마든지 남자와 여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식이 장성해도 여전히 내 배우자에게 섹시하고 좋은 데이트 상대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오십줄에 접어들었다 하여, 아이들이 커간다 하여 이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도덕적 당위가 자연스러운 욕구를 압도하니 이것이 망측하고 떳떳하지 못한 일이 될 밖에..

잘못된 우선순위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행복한 삶을 위해 조정되어야 한다.

잊지 마시라.

당신은 부모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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