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i.love.Story

대륙으로 가는 길 본문

에세이

대륙으로 가는 길

모피어스 김 2018. 7. 5. 23:51

서기 648년.
신라의 김춘추는 당의 수도 장안에서 당태종 이세민을 만났다. 이 만남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다. 이 만남을 통해 나당연합군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라는 백제 의자왕의 집요하면서도 줄기찬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신라를 집어삼키는 것에 있음이 틀림 없었다. 김유신이 이를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으나 약소국 신라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같았다. 이를 보다못한 김춘추가 도박과도 같은 순방길에 올랐다. 말이 좋아 외교 순방이지 주변 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교력은 그 나라의 국력과 비례한다. 약소국 신라에서 온 이름 모를 외교관은 가는 곳마다 푸대접을 받았다.

그런 그를 당태종 이세민이 친히 접견했다. 더구나 당시 당은 백제와 우호관계에 있었다. 이것은 이세민에게 큰 그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신라의 명장 김유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당태종 이세민은 어떤 생각으로 김춘추를 만났던 것일까?

당시 당의 주적은 고구려였다. 그들은 고구려와 싸워 이겨본 적이 없었다. 불과 수십 년 전 수양제가 113만 대군으로 친정을 나섰는데도 대패한 쓰라린 기억은 당시에도 그들에게 생생하게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세민은 중국의 황제들 중 드물게도 전략적 사고가 되는 인물이었다.

군사 전략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배후 공격의 효율성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일전을 치러본 이세민은 고구려와 정면으로 맞붙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고구려의 배후를 공격해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그는 그 파트너로 백제와 신라를 놓고 저울질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김춘추를 만나본 그가 신라가 파트너로 더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 하나 더..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고구려와의 싸움은 공성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적이 말해주 듯 당의 군대는 공성전에 약했다. 그러나 신라는 약소국이긴 해도 공성전에 능했다. 여기에 지략에 능한 상승 장군 김유신이 있었다. 나는 이것 역시 당태종 이세민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 요소였다고 본다.

당시 김춘추가 원한 것은 구원병 파병이었다. 그가 이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백제와의 전쟁을 의미했다. 그로써는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라를 선택한다. 그렇게 탄생한 나당연합군은 이후 백제를 격파하고 고구려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한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김춘추의 승부사 기질과 당태종 이세민의 전략적 사고판단이 낳은 결과였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통일은 우리 민족 전체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신라의 입장에서 이것은 몇 배의 성장을 이룬 것이지만 이세민은 숙적 고구려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이 골치 아픈 기마민족을 한반도 안에 가둬버리는 성과를 거둔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 민족은 이후로 단 한 번도 한반도 바깥으로 진출하지 못한다. 몇 번의 시도는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세종의 북방개척이 현실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당태종 이세민의 선견지명은 정말이지 탁월한 것이었다.

오늘 문대통령과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만난다. 나는 이 만남이 대륙으로 가는 길을 열기를 소망한다. 생각해보시라. 남한은 섬이다. 물리적으로 대륙과 연결되어 있을지는 몰라도 선박이나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대륙으로 갈 수 없는, 사실상의 섬이다.

사람의 생각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폐쇄된 공간은 사람의 사고에서 가능성의 영역을 축소시킨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우리의 역사에서 대륙의 가능성은 배제된다. 병자호란 이후 볼모로 잡혀갔던 효종이 즉위하고 북벌론을 제기했을 때 조선 사대부들의 반응은 터무니 없다는 것이었다. 효종의 북벌론은 현실적인 국제정세를 살핀 결과였지만 이미 반도 안에 갇혀버린 사대부들의 사고는 그 가능성마저 따져보기를 거부했다.

오늘 이루어지는 남북정상회담과 5월에 있을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와 평화정착으로 이어진다면, 그래서 대륙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면 우리는 새로운 공간감각을 갖게 될 것이다. 넓어진 활동공간을 인지한 사고는 보다 자유로워지고 그 영역 또한 넓어질 것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삶과 역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매우 궁금하다.

공감 버튼 꾹 한 번 눌러주세요...^^ 로그인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0) 2018.07.04
삶은 여행이니까..  (0) 2018.07.04
예쁨과 잘 생김, 그리고 매력  (0) 2018.06.30
그들이 살아온 세상  (0) 2018.06.28
'빨리'보다는 '제대로'가 중요한 시대  (0) 2018.05.0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