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i.love.Story
공포영화에는 공식이 있다. 처음에는 아주 평온한 일상이 펼쳐진다. 그러다가 뭔가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관객들은 긴장하기 시작하고 악령이나 귀신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다. 영화 전반부까지 악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러내도 옷자락 정도 보여주고 사라진다. 공포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악령이나 귀신이 모습을 드러내기 바로 직전이다. 그것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존재는 느낄 수 있을 때, 그리고 그것들이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음을 알게 됐을 때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등줄기에서 찬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때 공포는 극에 달한다. 사람은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무섭게 생긴 악령이나 귀신이라도 일단 보고나면 무서움이 덜해진다. 그래서..
"키스? 가족하고 무슨 키스를 해? 여자는 시집 와서 애 둘 낳으면 그때부터는 그냥 가족이야.."몇 년 전 술자리에서 한 지인이 했던 얘기다. 이 분은 50대 초반이었는데 부인과 키스를 한 지 무려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어지간히 취기가 오른 그가 술기운에 농담으로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그말은 약간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사실인 것으로 보였다. 난 이 분의 말을 들으며 서글픔을 느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생활이 오래되면 부모만 남고 남녀는 사라질까?한 언론의 관련 기사를 보니 다음과 같은 통계가 나와있다.'해외 논문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세계 섹스리스 부부 비율은 평균 20% 수준이다. 이에 비해 한국(36%)은 일본(45%)에 이어 두 번째로 섹스리스 부부가 많은 나라로 드러났다..
인간과 야수의 차이는 뭘까? 가끔씩 그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야수는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 매우 정직한 존재다. 야수는 생존을 위해 살육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는다. 야수가 벌이는 살육의 현장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만큼 처참하다. 그러나 야수는 그 과정을 통해 생존을 보장 받는다. 그것은 잔혹할지언정 오로지 생존을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는 순수하다.인간은 이와는 좀 다르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인간은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서도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야수보다는 세련된 방식으로 살육을 한다. 그렇다고 인간의 본성이 야수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오늘 소개하려는 이 영화 '더 그레이'를 보면 늑대들에게 쫓기던 오트웨이(리암 니슨분) 일행이 늑대 한 마리를 잡아 구..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데, 특출한 구석도 없는데 인내심과 뚝심 하나로 꽤 괜찮은 위치에 오르는 사람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리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인내심이 중요한 자질임을 확인시켜주는 사람들.. 이들의 일상은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꾸려진다. 이들은 그리 대단치 않은 결과물이라도 꾸준히 결과물을 낸다. 처음에는 보잘 것이 없지만 이런 결과물도 쌓이고 쌓이면 빛이 나고 특별한 가치가 부여되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그들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이 과정을 잘 지켜보면 여기에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성장이라는 것이 날마다 조금씩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미있는 성장은 어느 한 시기에 집..
내가 용인으로 이사를 온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아파트 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아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선택했다. 조경이 잘 되어 있는 데다가 맞은 편으로 야트막한 야산이 보인다. 이 산과 아파트 단지의 경계선에 철제 펜스가 쳐져 있는데 간혹 고라니가 나타나 바로 그 앞에서 노닐기도 한다. 이곳으로 오기 전 대도시에서만 생활을 했던 나는 이런 장면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청솔모가 돌아다니는 것 정도는 흔히 볼 수 있었으니 내 생애 처음으로 자연과 근접한 곳에 둥지를 튼 결과였다.이때부터 난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던 것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계절의 변화'였다. 대도시에서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기 힘들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기 힘들었기..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다. "이걸 재미있다고 해야 하는거야? 재미없다고 해야 하는거야?" 나는 웃고 말았다. 그 분이 왜 이런 얘길 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영화의 완성도 자체는 괜찮은 것 같은데.. 이야기도 재미있는 것 같은데 관객의 반응은 떫떠름한 경우가 있다.이것은 보통 관객이 감정이입할 지점을 찾지 못했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영화 '7년의 밤'은 전체적으로 원작의 무게에 눌려 있다.허긴 그도 그럴 것이 국내작가 중 서사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정유정의 작품이니...원작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정유정의 문체가 갖는 흡인력과 그녀의 숨막히는 서사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이다.그런데 원작에서 느끼는 재미를 관객들은 비교적 잘 시각화된 영상을 보고도 느끼지 못한 것 같..
옛날에 SMT왕국이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미술품을 수출해서 먹고사는 나라였어요. 그래서 이 나라에는 화가들이 많았습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 관청에 가져오면 큐레이터들이 그림을 보고 값을 매겨주었습니다. 그러면 화가들은 그림을 그 가격으로 시장에 내다팔 수 있었어요.이 나라에서 큐레이터는 인기 직업이었는데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공인 자격증을 따야 했어요. 이 자격증은 1급, 2급, 3급이 있었는데 3급은 금화 5개, 2급은 금화 10개, 1급은 금화 100개까지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3급과 2급은 조금만 노력하면 딸 수 있었지만 1급은 따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어요. 그런데 이 자격증 제도에는 문제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자격증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
봄은 가장 허무하게 지나가는 계절이 아닐까?넓은 들판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피자마자 속절없이 떨어지는 벚꽃처럼 그렇게 가는 계절이 봄이다. 가는 것 같지도 않게,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계절.. 그래서 봄은 상실의 아픔을 경험하는 계절이다.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 있다. 바로 이 영화 '봄날은 간다'의 동명 엔딩 타이틀곡이다. 자우림의 김윤아가 부른 이 곡은 상실의 아픔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사랑이 남기고 간 빈 공간.. 그 메울 수 없는 공백을 가슴에 안고 봄날의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정을 우리는 노래가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에 느낄 수 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지만, 따스한 햇살이 온 대지를 내리쬐지만 이 사람은 봄을 느낄 수 없다. 봄이 왔지만 봄을 느낄 수 없는 ..
나도 모르는 멍 때리기..요즘 내가 종종 보이는 증상이다.이것은 소모된 육체와 정신이 보이는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난 이럴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내가 사회초년병이었던 시절.. 상사들은 내가 이런 증상을 보일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요즘 나사가 좀 풀린 것 같애.."도덕적 자격지심을 심어주는 게 없던 힘까지 쥐어짜게 되는 심리적 기제가 된다는 걸 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그때 난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난 나 스스로를 나태한 자로 규정해야 했다. 인간으로서 쉴 권리를 당연히 누릴 수 있었지만 남은 힘을 닥닥 긁어모아 일을 하기 위해서..이제야 헌법에 '근로자'라는 말 대신 '노동자'라는 말이 들어갈 모양이다.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 아직은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말이..
옛날에 꼰대 한 분과 식사겸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취기가 약간 오르자 이 분은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뭔가 가르침을 줘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는지 자신의 엉성한 세계관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분은 말했다. "세상은 말이지.. 거대한 먹이사슬이야." 얘기인즉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정글이니 강자가 되려 노력하지 않으면 남에게 잡아먹히는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자신이 포식자의 위치에 있다는 자부심을 내비쳤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포식자의 위치에 있다는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쓴웃음이 절로 났지만 비즈니스상 중요 인물이어서 참고 그의 말을 들어줘야 했다. 나이 든 꼰대가 술 먹고 한 헛소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것은 우리나라 보수세력의 세계관이다..